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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챔피언

체스 챔피언 : 초대 빌헬름 슈타이니츠(Wilhelm Steinitz)

by chessceva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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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는 간단히 말해, 상대의 킹을 체크메이트하는 것이 목표인 보드게임입니다. 하지만 체크메이트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수 계산과 전략 설정 등 높은 사고력이 요구됩니다. 더 좋은 수를 찾기 위해 더 깊은 사고를 요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체스는 지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그 특성이 사람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기물들의 연계를 통해 최선의 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는 누군지 궁금해했습니다.


최초의 세계 체스 챔피언쉽 이전

세계에서 체스를 가장 잘 두는 사람. 특히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체스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던 과거에는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논쟁거리였습니다. 아무래도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국제적인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 확실한 근거가 될 텐데, 18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나라에선 누가 제일 잘한다더라', '저 나라에서는 누가 최고라더라' 하는 말들이 떠돌 뿐이었고, 결국 누가 진정한 최강자인지는 직접 맞붙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국제 체스 대회를 우승한 사람을 찾아보면 알 수 있겠죠. 이전에도 제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체스 플레이어는 많았지만, 최초의 국제 체스 토너먼트인 '런던 체스 토너먼트(London 1851 chess tournament)'에서 우승한 아돌프 안데르센(Adolf Anderssen)이 당시에 체스를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죠.

이 사람이 바로...

폴 모피(Paul Morphy)였습니다. 폴 모피는 1857년 미국에서 미국 체스 챔피언쉽의 전신인 제1회 'American Chess Congress'에서 우승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1858년 안데르센을 7승 2패 2무로 꺾으며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럽에서 체스로 유명했던 사람들을 다 꺾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미국 8대 대통령의 아들, 보스턴 시장, 하버드 총장 등으로부터 많은 환대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유럽을 제패한 폴 모피가 바로 '체스 챔피언'이라고 불린 기록이 남아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폴 모피는 체스를 단순한 오락(recreation)으로 여겼고, 그렇기 때문에 체스에 대해서 너무 큰 비중을 두면 안 된다고 봤습니다. 폴 모피는 체스 선수가 아니라 법조인이 되고자 했고, 예시로 1857년 미국에서 대회를 우승하기 전에 루이지애나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귀국 후 법조인으로서 다시 커리어를 시작하려던 폴 모피는 체스에서 은퇴했고, 세계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는 다시 안데르센으로 여겨졌습니다.

 

1866년, 드디어 이 글의 주인공, 빌헬름 슈타이니츠가 영국에서 안데르센과 경기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14전 8승 6패, 안데르센을 압도하지는 못했어도 결국 승리를 따낸 것입니다. 이후 1867년 파리 체스 토너먼트(Paris chess tournament)에서 3위, 1867년 던디 토너먼트(Dundee tournament)에서 2위, 1870년 바덴바덴 체스 토너먼트(Baden-Baden chess tournament)에서 안데르센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최고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1872년 런던 토너먼트(London tournament) 우승, 1872년 요하네스 주커토르트(Johannes Zukertort)와의 경기 승리(7승 1패 4무), 1873년 비엔나 체스 토너먼트(Vienna chess tournament) 우승, 1876년 조셉 헨리 블랙번(Joseph Henry Blackburne)과의 경기에서 7승 0패 0무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초대 세계 체스 챔피언

1883년, 런던 체스 토너먼트에서 요하네스 주커토르트가 우승, 슈타이니츠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회 결과에서 슈타이니츠는 3위인 조셉 헨리 블랙번보다 2½점 앞섰고, 주커토르트는 슈타이니츠보다 3점을 앞섰습니다. 당연히 주커토르트가 이제 챔피언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고, 챔피언 결정전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슈타이니츠는 런던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International Chess Magazine'을 창간하여 자신의 입장을 전하는 한편, 주커토르트와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후원사를 찾고, 주커토르트가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대국료와 비용을 포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습니다.

 

1886년, 최초로 공식적인 세계 체스 챔피언쉽이 개최되었습니다. 경기 규정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우승 상금은 각 선수당 2,000달러.
  • 10승을 먼저 달성하면 승자.
  • 매주 3번 경기 진행.
  • 첫 30수를 2시간, 이후 15수마다 1시간의 제한시간 적용.
  • 9:9 무승부 시, 챔피언 없이 대회 종료.

1월 11일, 뉴욕에서 첫 대국이 시작되었고, 슈타이니츠가 승리하며 기분 좋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주커토르트가 내리 4연승을 거두며 분위기는 급격히 주커토르트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2월 3일,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하여 2월 10일에 슈타이니츠가 3승 1무를 기록하며 반격에 성공했습니다.

 

2월 26일,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하여 3월 29일에 슈타이니츠가 6승 1패 3무를 기록하며 먼저 10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렇게 슈타이니츠는 주커토르트와의 경기에서 10승 5패 5무로 최초 공식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빌헬름 슈타이니츠


플레이 스타일

18세기부터 1880년대까지 유행한 체스 플레이 스타일이 있습니다. 멋있는 기물 희생과 화려한 전술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스타일, 낭만주의입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1. d4로 시작하는 '닫힌 게임'을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대신에 1. e4로 시원시원하게 열려 있는 게임, 킹즈 갬빗, 에반스 갬빗 등 날카로운 오프닝을 선호했습니다. 슈타이니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872년까지는 '오스트리아의 폴 모피'라고 불릴 만큼 공격적인 체스를 보여줬습니다.

 

예시로 슈타이니츠의 경기 하나를 보겠습니다.

빌헬름 슈타이니츠 vs 아우구스투스 몽그리딘(1862) 14...a6

이 포지션에서, 슈타이니츠는 먼저 상대방 킹사이드를 약화시키고 자신의 화려한 전술을 보여줍니다.

나이트와 룩을 희생하며 킹사이드 공격을 시도합니다.
18...Re8, 킹이 도망갈 자리를 만들어줍니다.
19. Qxg6, f7 폰이 핀에 걸려있는 것을 이용해 나이트를 잡으며 다른 위협을 만듭니다.
상대가 퀸으로 수비를 하자 비숍과 룩을 희생하며 퀸을 잡아냅니다.

슈타이니츠의 22. Qxf7을 보고 상대가 기권했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희생과 전술로 상대를 계속 압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슈타이니츠는 1870년 바덴바덴 체스 토너먼트에서 안데르센에 밀려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때도 자신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체스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적인 스타일, 'Combinational play'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슈타이니츠가 내린 결론은, '공격이나 희생 등으로 상대의 수를 제한하여 구체적인 이득을 얻는 전술적 플레이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지속적인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였습니다. 슈타이니츠는 공격이 상대의 약점이 드러났을 때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공격하기 전에 상대의 포지션에 약점을 먼저 확실하게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873년, 비엔나에서 체스 토너먼트가 열렸습니다. 슈타이니츠는 현대 체스의 근간이 되는 '포지셔널 플레이'를 보여주며 조셉 헨리 블랙번과 동률로 1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포지셔널 플레이

슈타이니츠의 연구 덕분에 체스의 유행을 바꿔버린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했습니다. 포지셔널 플레이는 무엇일까요?

체스는 99% 전술이다.

 

체스에서 전술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포지션에 뚫고 들어갈 약점이 없는데도 전술로 이득을 만들어내려고 하면, 무리한 공격이나 희생으로 손해를 보고, 슈타이니츠가 했던 고민을 그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지셔널 플레이는 전술을 상대방의 실수에 기대거나,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닌, 형세 자체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포지셔널 플레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 잘 보호된 킹
  • 기물의 활동성
  • 중앙 차지, 혹은 컨트롤
  • 넓은 공간
  • 약점(대표적으로 폰 구조)

슈타이니츠의 경기 하나를 예시로 보겠습니다.

 

빌헬름 슈타이니츠 vs 알렉산더 셀만(1885) 5. f4

프렌치 디펜스 슈타이니츠 바리에이션, 프렌치 디펜스에서 흑은 c5로 백의 폰 구조를 위협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략이고, 백은 c폰이 아닌 f폰으로 폰 구조를 유지하는 게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c폰이 올라오자 바로 잡아버립니다.

이러면 흑의 비숍이 폰을 잡으며 자연스럽게 전개됩니다. 꽤 위력적인 대각선을 가지고 백의 캐슬링을 방해하면서 말입니다. 흑의 c폰과 백의 d폰이 교환되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슈타이니츠는 자신의 계획을 계속 진행합니다.

7. Nf3 a6

백은 나이트를 전개해서 중앙에 컨트롤을 더해주고, 흑은 a6로 나이트 침투를 예방하는 동시에, b5까지 폰을 전진할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몇 수 더 진행되며 서로 기물을 전개하고, 셀만의 공격적인 수가 나옵니다.

9...Nb4

백의 밝은 색 비숍은 분명 좋은 비숍입니다. 중앙에 있는 폰들에 가로막혀 있지도 않고, 좋은 대각선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셀만은 나이트를 침투시켜 백의 좋은 비숍과 교환하고자 합니다.

11. Nd1

나이트가 뒤로 가는 수이긴 하지만 의도는 명확합니다. 나이트로 비숍을 잡든지, 치우든지 결정해라.

11...Nxd3+ 12. cxd3

백은 폰으로 되잡으면서 c파일을 열고, 폰이 중앙에 더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13. b4

흑이 퀸으로 비숍과 배터리를 만들어 대각선을 강하게 통제하려고 하자, 백이 b4로 비숍을 공격합니다. 동시에, 흑의 폰 구조를 고정시킵니다.

이제 이 비숍을 어떻게 쓰죠?
14. a3

백은 계속해서 흑의 폰 구조를 고정시키고 밝은 색 비숍의 직업을 뺏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흑은 d4 → Bb7으로 d4 폰이 약해지더라도 밝은 색 비숍에게 강력한 대각선을 쥐여 주고 다시 취직시키면 될 것입니다.

저런.

무슨 의도였는지 짐작하기 힘든 수입니다. 흑은 적당한 타이밍에 f폰 브레이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는데, 그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렸습니다. e6는 이제 약점이 되었고, 백의 나이트가 d4에 안착하면 더 지키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밝은 색 비숍의 활동성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15. Rc1 Bb7 16. Be3 Qd8 17. Nd4

백은 룩으로 오픈 파일을 가져가고, 비숍으로 흑의 퀸에게서 대각선을 뺏어오고, 나이트를 d4에 무사히 안착시킵니다. 여기서 슈타이니츠가 처음에 dxc5를 했던 이유가 나오는 것이죠.

6. Bxc5

흑은 c폰이 없기 때문에 c폰으로는 d4칸을 컨트롤할 수 없고, e폰은 백의 폰에 막혀서 e5까지 전진할 수 없기 때문에 역시 d4칸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d4칸을 컨트롤한다면 기물로 해야 하는데,

17. Nd4

그것마저도 완전히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저 나이트는 d4칸에서 e6폰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할 것입니다. 이것이 슈타이니츠가 생각했던 포지셔널 플레이입니다.

춤추는 백의 나이트

슈타이니츠는 무려 다섯 수 연속 나이트만 움직이면서 결과적으로 나이트를 적의 진영에 침투시킵니다. 닫힌 포지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플레이죠. 문제는 흑입니다. 흑은 활동적인 백의 기물들을 위협들을 막을 방법이 있는지부터 확실하지 않습니다.

25. Rc1

슈타이니츠는 룩으로 퀸을 공격해 오픈 파일을 장악합니다. 점점 백의 기물들의 잠재적인 위협이 실체가 되어갑니다.

32. Rxc7

퀸이 교환되면서 백의 룩이 적 진영으로 자연스럽게 침투합니다.

34. Bc5

백의 기물들이 마치 흑의 진영을 압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35. Bd6, 흑 기권, 1-0

흑은 더 이상 e6폰을 지킬 수 없습니다. e6폰 뿐만 아니라, 나이트가 e6폰을 잡으면서 시작될 공격도 막을 수 없습니다. 흑은 이 수를 보고 기권했습니다.

 

지금 이 포지션에서도 기물 점수는 같습니다. 35수까지 분명히 어떠한 전술로도 기물 이득을 취하지 않았지만, 포지셔널 플레이에 압도당해 e6폰에 더불어 룩까지 잃는 것(룩을 지키려고 하면 강제 체크메이트 수순이 존재)이 확정되자 기권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무리

슈타이니츠는 1894년 세계 체스 챔피언쉽에서 다음 글에서 다룰 에마누엘 라스커(Emanuel Lasker)에 패배하여 세계 체스 챔피언 타이틀을 넘겨주게 됩니다.

 

슈타이니츠는 체스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현대 체스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슈타이니츠는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체스 철학과 혁신적인 포지셔널 플레이는 이후 체스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격 일변도의 ‘낭만주의 체스’에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포지셔널 체스’로의 전환을 이끈 그는, 단순한 챔피언이 아니라 체스를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한 개척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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